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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산을 오르며

2008년 공직 은퇴 후 내가 선택한 운동 중 대표적인 것이 등산이다. 그동안 300여 차례 산을 오르내렸다. 산행은 돈 적게 들고 건강에 좋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산을 다니며 많은 것을 깨닫고 자연의 오묘함을 느낀다. 산은 계절마다 변하고, 날씨에 따라 다르니 오를 때마다 느끼는 운치가 다르다. 초봄 새싹이 파릇파릇 돋을 때 그 연록의 싱그러움, 여름 숲의 짙푸른 울창함, 가을의 만산홍엽, 앙상한 가지로 산의 속살을 드러내는 겨울 산의 묘미, 하얗게 눈 덮인 설경 등 언제 어느 때나 산은 독특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더구나 날씨에 따라 화창한 날의 화사함과 운무 자욱할 때의 은은한 멋, 비 내릴 때의 그 싱그러움 등 때마다 색다른 신비를 느낀다.

나는 산을 다니며 자연의 광대함과 인간의 보잘 것 없음을 느끼며 몇 가지 삶의 지혜를 깨달았다.

산이 낮다고 깔보면 안된다.
나는 해발 1천 미터 이상이 되면 큰 산의 신비감을 갖지만 해발 몇 백m라면 시시하게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산악회와 오른 첫 산이 전남 강진 덕룡산인데 주봉이 430m라 대수롭잖게 생각했다. 그런데 가파른 능선에 오르니 우뚝한 봉우리들이 즐비했다. 아찔한 절벽과 힘든 봉우리 오르내리며 산의 장엄함을 느꼈다. 광대한 자연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인간이 아닌가? 산을 깔보지 마라. 자연 앞에서 겸손하고 작고 사소한 일에도 경홀히 여기지 말라.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것은 높은 산이 아니라 작은 돌부리다.

산을 오를 때는 고개를 푹 숙여야한다.
산을 오를 때는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 것이 편하다. 가끔 주위를 살펴보기도 하지만 고개 숙이고 묵묵히 한걸음씩 앞으로 나가면 목적지에 도달한다. 산등성이 오르며 고개 쳐들면 힘들고 다친다. 힘든 산 오르며 삶을 생각한다. 나는 살면서 고개 쳐들고 있지는 않는가? 큰일 이루려면 고개 숙이고 겸손해야 된다.

정상은 멀찍이 뒤에 숨어있다.
산 능선에 오르면 가까이에 우뚝한 봉우리가 나타난다. 늠름하고 멋지게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 그것이 정상이 아니다. 정상은 눈앞의 봉우리 뒤쪽에 멀찍이 떨어져 숨어있다. 모임에 가면 앞에서 설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주인공이 아니라 보조자다. 주인공은 맨 나중에 나타난다. 나는 행여 앞에서 설치지 않는지 돌아본다. 멀찍이 숨어 있는 산의 정상처럼 더 은근(慇懃)한 멋을 갖고 싶다.

산길은 내려갈 때 조심하라.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위험하다. 내려갈 때 다치기 쉽다. 내가 산에서 몇 번 넘어진 것도 모두 내려가면서였다. 산길뿐이랴? 우리 삶도 내려갈 때 조심해야한다. 목표를 위해 달려갈 때에는 곁눈 팔지 않고 열심히 살던 사람이 목표를 이룬 후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 더 조심하라. 교만이 패망의 원인이 된다. 내 인생도 지금 내리막길을 간다. 더 천천히 조심스레 살리라.

산에서 세상을 관조한다.
산에서 아래를 보면 모두 작은 점이다. 큰집 작은집 구분도 없고 사람들도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우리는 개미를 보며 잘난 개미, 부자 개미라며 구분하지 않지만 지들 끼리는 서로 우열을 가리고 잘난 척 뽐낼 것이다. 우리 인간도 조금만 띄어서 보면 개미 같은 미물! 뭐 잘났다고 뽐내거나 위축될 것인가. 산에서 세상을 보고 나를 본다. 겸손하자. 내가 행여 우쭐거리지 않는지? 다른 분들 불편케 하지 않는지?

산은 어머니 품과 같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 곳에 있다. 그리고 우리를 품어 준다. 산에서 교만하거나 까불면 다친다. 고개 푹 숙이고 뚜벅뚜벅 걸어가면 정상에 이른다. 산은 나를 겸손케 만드는 스승이요 나의 몸을 다듬어 주고 어머니 품처럼 평화를 준다. 그래서 나는 산을 오른다.

칼럼_박권제

산을 오르며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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